조진영 전 괌한인회장, “환율 여파로 관광객 줄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7-01 10:16본문
1983년 괌으로 이주해 건설업 경영
조진영 전 괌한인회장(마닐라=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회장 김기영)는 ‘2026 아시아한인회장대회 & 한상대회’ 마지막 날을 마닐라 남부 실랑지역에 있는 ‘필 오아시스 호텔 &리조트’에서 열었다.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을 알라방의 퀘스트 호텔과 인근 페스티벌 몰에서 강연회와 전시회 등으로 진행한 후 4일째인 27일을 팍상한 폭포 문화탐방과 골프대회로 치르면서, 숙소를 실랑지역으로 옮겼던 것이다.
팍상한 폭포는 폭포 자체의 웅장함보다는 폭포로 가는 진입 경관이 장관이었다. 긴 협곡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가는 과정도 ‘필리핀 문화의 속살’을 느끼게 하는 여정이었다.
문화관광팀이 팍상한 폭포를 다녀올 때 골프대회 팀은 ‘제8회 세계한민족골프대회’에 합류해 높은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아시아한인회장대회 마지막 날인 밤의 환송연은 골프대회 시상식과 함께 성황리에 열렸다. 골프대회 단체우승은 말레이시아팀이 차지했다.
조진영 전 괌한인회장과 만나 얘기를 나눈 것은 이튿날인 6월 28일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그는 리조트 호텔 부근을 한 바퀴 돌고 왔다고 했다.
태평양의 넓은 바닷속에 있는 괌은 미국령이다. 하지만 괌한인회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가 아닌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조진영 회장이 괌 회장을 맡을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조 회장은 제29대 괌한인회장으로 2016년에서 18년까지 재임했다.
“괌은 과거 필리핀의 유배지였어요. 마치 제주도 같은 역할을 했어요.”
1983년 괌에 진출해 건설업을 경영해온 그는 “괌에서 차모로 원주민 다음으로 필리핀계의 인구가 가장 많다”고 소개했다. 한인은 필리핀인 다음으로 많다는 설명이었다.
아시아총연 총회와 아시아한상대회가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괌으로의 한인 이주사는 태평양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징용 등으로 괌에 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인들이 현지 차모로 원주민들과 가정을 이루며 괌 동포사회의 첫 씨앗이 됐다.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들어서다. 1968년 중앙산업을 필두로 현대건설, 동아건설 등 한국의 건설 인력들이 괌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대거 진출하면서다. 이후 미용업, 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들이 합류하면서 1970년대에 한인사회의 틀을 갖췄다. 한인 인구는 괌 전체 인구 약 16만 명 중 7천여 명을 차지하고 있다.
미 연방하원 3선 의원이 영 김 의원도 괌 이주민 가정 출신이다.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난 영 김 의원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3세 때인 1975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령 괌으로 이주했다.
괌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괌 해변가에서 빈 캔을 주워 모으는 등 전형적인 이민자 가정의 성실하고 고단한 삶을 직접 경험했다.
어린 영 김은 괌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미군에 입대한 언니를 따라 하와이로 이동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 본토로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본격적인 미 주류 사회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은 미국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은 6.25 때 4만 명 이상의 젊은 군인들이 목숨을 바쳐 한국을 지켜줬어요.”
그는 “한국의 번영이 미국과 직결돼 있다”면서, “괌에서도 한인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진영 회장은 괌에서 20년간 현지 축구팀 감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전화: 82-2-6160-5353
- 이메일: wk@worldkorean.net
- 카카오톡, 위챗, 라인, 웟챕 ID: worldkorean
- 이전글맹봉호 필리핀 다바오한인회장, “민다나오 지진 피해 지원해” 26.07.01
- 다음글[동행기] 아시아총연의 팍상한폭포 문화탐방… 필리핀 문화 ‘속살’ 보는 독특한 여행 26.07.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