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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몽골이태준기념관, 왜 한인회가 관리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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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5-10-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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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준비 때는 보훈부에 “한인회가 관리운영” 의견서
현 대사는 “현충시설이어서 한인회 관리 안 된다”
새로 개관한 몽골이태준기념관에서 박태언 한인회 사무국장과 함께새로 개관한 몽골이태준기념관에서 박태언 한인회 사무국장과 함께

(울란바토르=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몽골 울란바토르의 이태준기념관을 찾은 것은 10월 13일이었다. 울란바토르는 북위 48도 가까워서, 10월 중순인데도 낮 기온이 섭씨 6, 7도의 쌀쌀한 날씨였다.

이태준기념공원이 울란바토르의 복드산 기슭에 들어선 것은 2001년이다. 뒤로는 긴 산맥을 따라 툴룰 강이 흐르고 있다. 그해 몽골 정부와 당시 한국의 국가보훈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현재의 자리에 이태준기념공원을 만들고, 기념관도 세웠다. 몽골에서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를 하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태준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였다. 관리는 줄곧 한인회에서 맡아왔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르면서 당초 가건물 형태로 지어진 단층의 기념관이 너무 낡아지자, 한인회가 나서서 국가보훈부와 함안군이 기금을 받아 지난 9월 2일 새로운 기념관을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주몽골한국대사관과 몽골한인회가 함께 주관한 이날 개관식에는 최진원 주몽골한국대사, 조정식 국회의원, 조윤경 몽골한인회장, 조근제 함안군수, 김동균 대암이태준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몽골 측에서도 환경기후변화부 졸바야르 사무차관, 나치만 국가보훈부 보훈문화정책관, 울란바토르시 항올구 체렌 구청장, 외교부 에르덴토야 전 주한대사 등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개관식에 이어 몽골 ‘이태준 선생 기념관’ 건립 사업에 앞장선 박호선 전 몽골한인회장, 국중열 기념관 건축위원장이 지난 9월 25일 함안군으로부터 명예군민증을 받았다. 국중열, 박호선 씨는 또 이날 박완수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장도 받았다. 이태준 선생의 고향인 경남 함안군을 기려준 공로였다.

지난 10월 13일 이태준기념관을 찾았을 때, 한인회의 박태언 사무국장이 기자를 맞았다. 마침 한국으로 일시 귀국한 조윤경 몽골한인회장이 박 사무국장과의 만남을 주선해줬다.

이태준기념관 1층의 한몽디지털교류관에서 3면에 걸치 대형스크린이 설치돼있다.이태준기념관 1층의 한몽디지털교류관에서 3면에 걸치 대형스크린이 설치돼있다.

기념관은 과거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기자는 지난 20여 년간 몽골 바양노르솜 지역에 나무심기운동을 하던 국내 단체를 따라갔다가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11년 전인 2014년 5월이었다. 당시에는 가건물 형태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몽골의 교민 수는 1800여 명으로 대부분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어요. 기념관은 9월 4일 개관식을 가졌는데 300명이 참여해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몽골에서 20여 년간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박태언 사무국장은 “몽골 여행 성수기가 끝날 무렵이었는데도 개관식 후 한 달간 1만여 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이 기념관을 찾았다”고 소개했다.

그의 안내로 기념관을 둘러봤다. 기념관은 2층 건물로, 1층에는 오라토리움 형태의 70석짜리 강당과 3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두른 한-몽디지털교류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몽골에서 가장 큰 디지털 스크린이자 첨단시설입니다.”

디지털 스크린에는 함안 이태준기념사업회의 활동과 몽골 한인사회의 행사도 나오고, 미디어아트 작품도 소개됐다. 마치 모네의 대형 ‘수련’ 작품을 4면에 전시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벽면 3면으로 연속해서 바뀌는 디지털 영상이 이어진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2층은 이태준전시관과 다목적실이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이태준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그 안으로는 이태준 선생의 독립운동과 몽골에서의 의료활동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태준 선생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꾸몄어요. 오신 분들마다 내용과 규모에 놀라더라고요.”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의 인천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대암(大岩). 세브란스의학교 (연세대의대) 제2회 졸업생으로,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한 후 독립의 뜻을 품고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한다.

이어 31세이던 1914년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떠난다. 몽골에서 김규식, 유동열, 서왈보 등과 함께 비밀군관학교를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무산되자 선생은 대신 동의의국이란 병원을 열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처로 삼았다.

전시관 내부전시관 내부

1917년 몽골 마지막 왕인 복드 칸의 주치의가 된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군의관 감무(監務)로도 임명되고,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김규식에게 활동비를 대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에 지원하는 원조금을 운반했고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 제조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1년 일제와 친한 러시아 백군이 울란바토르 점령하면서 이들의 손에 의해 복드산 기슭에서 피살되고 만다. 38세 때였다.

이 같은 내용이 소개된 대형 전시실 맞은 편으로는 다목적실이 있었다. 칸막이 쳐진 4개의 사무실 앞 열린 공간에는 몽골 교민 어린이들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직 이 기념관을 관리할 기구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한인회가 관리해 왔는데, 새 기념관이 지어지면서 대사관에서 관리운영할 기구를 새로 만들자고 해서 논의 중입니다.”

박 사무국장은 이렇게 소개하며, “임시로 한인회에서 사람을 파견해 손님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찾아온 1만여 명의 한국 관광객들도 한인회에서 사람을 투입해 안내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국중열 전 몽골한인회장이 와서 기념관에 와서 자리를 함께 했다. 현재 대암이태준장학회 제2대 회장을 맡고 있는 국회장은 이태준기념관의 재건축 사업을 담당한 건축위원장으로 일했다.

“저기 작은 방에는 대암이태준장학회가 들어가고, 이 사무실은 기념관 관리운영 기구가 상주하며, 다른 방은 전문 해설사들이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4개의 사무공간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밝힌 국 회장은 “기념관을 만들고 나자, 당초와는 달리 대사관이 입장을 바꿔 한인회가 관리운영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아직 관리주체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년간 한인회가 기념관을 관리해왔어요. 재건축 기금도 당시 박호선 한인회장이 뛰어다니면서 한인회 계좌로 받아냈고, 착공 허가와 준공필증도 한인회 앞으로 나왔어요.”

이렇게 소개하는 그는 “처음에는 대사관이 한인회가 맡아 관리운용 하라고 의견서까지 써 줬는데, 대사가 새로 오면서 입장을 바꿔서 갑갑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복드산 자이르 전승기념관에서는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이태준기념관도 사진속에서 찾을수 있다.복드산 자이르 전승기념관에서는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이태준기념관도 사진속에서 찾을수 있다.

2021년 기념관 건축을 추진할 때 당시 이여홍 주몽골대사는 국가보훈처장 앞으로 ‘국외현충시설 건립 검토의견서’를 보냈다. 이에 따르면 ‘사업주체’에 “몽골한인회에서 한인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이태준 열사 기념관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면서, “몽골한인회가 기념관 건립 실행 능력이 충분하다”고 돼 있다.

이어 ‘건립 이후 관리 및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몽골한인회에서 이태준 기념공원을 잘 관리하고 있어 관리에는 문제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면서, “각종 문화행사, 기념행사, 관광객 유치 등 활용도가 높다”고 썼다.

하지만 현 최진원 대사로 바뀌면서, 대사관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는 얘기였다. 국회장은 “관리운영할 기구를 따로 만들려 했으면 개관 전에라도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 얘기도 없다가, 지금에서야 한인회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그는 또 “착공허가도, 준공필증도 한인회 명의로 받았는데, 다른 관리운영 기관을 만들어 건물 등기를 한다면, 아버지가 집을 만들어 아들 이름으로 등기하는 식인데 양도세 등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진원 대사를 만난 것은 이날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대사관 접견실에서 만는 최 대사는 “몽골 정부의 한국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정책이 올해 말로 끝나서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며, 대사관의 현안을 소개했다.

이어 이태준기념관과 관련해 “보훈처에서 19억 원의 국비를 투입한 현충시설이어서 한인회가 아닌 별도의 관리운영 기구를 만들자고 한 것”이라면서, “보훈처도 대사관과 같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공사가 완공돼 한인회가 개관하자고 했으나 내부 컨텐츠가 제대로 안 돼 있고,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어서 지난 9월 4일 개관한 것”이라면서, “11월 중에 교민들도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어서 대사관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 만드는 관리운영 주체는 한인회와는 분리해서, 한인회, 대사관, 보훈부, 함안군, 몽골 정부도 참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소개했다.

이날 저녁에는 이태준기념관 신축을 계획하고 기금을 마련한 박호선 전 몽골한인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기념관 건축을 담당했던 국중열 건축위원장도 함께했다.

박호선 회장은 “국민주권 정부가 들어섰는데, 한인회나 한인사회가 현충 시설을 관리하면 안 된다고만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한인사회가 관리운영을 주도하도록 맡겨 놓고, 대사관은 관리감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대사를 만나 그 뜻을 전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지금의 최 대사는 그동안의 경과를 모두 알면서도, 한인회와 한인사회를 배제하고 오히려 몽골 정부를 끌어들이는 일에 몰두하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날 대화 중에 기자가 “사단법인인 대암이태준장학회를 몽골이태준기념사업회로 바꿔서 관리를 맡고, 이사로 대사관과 국가보훈부도 참여시키면 어떠냐”고 제안하자, 두 사람은  “문제는 한인회나 한인사회가 기념관 관리운영을 주도하도록 대사가 생각을 바꿀지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태준기념관 건립사업을 주도한 박호선 전 몽골한인회장과 인근 징기스칸 대형 기마상을 찾았다.이태준기념관 건립사업을 주도한 박호선 전 몽골한인회장과 인근 징기스칸 대형 기마상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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