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윤칼럼] ‘선교사’가 한인사회 갈등과 분열 불러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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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6-05-26 09:39본문
K-팝 공연을 현장에서 보면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대 위 아이돌만 본다. 그러나 화려한 공연 뒤에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움직인다. 어린 시절부터 인재를 길러낸 부모,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분쟁을 해결하는 법률팀, 음향과 조명, 특수효과, 무대 설치, 경호 인력까지 모두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연장 뒤편에는 컨테이너 수십 대 분량의 장비가 이동한다. 단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는 세계적인 공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조직의 역량이라고 봐야 한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목회자의 설교 능력이나 몇몇 헌신적인 교인의 열정이 교회를 움직였다면, 이제는 공동체 전체를 보호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인교회들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교회를 사업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조직과 연결된 사채업자들, 스스로를 “선교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분열만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 조직폭력배 이력을 과시하며 주변을 위압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접근한다. 헌신하는 척하고, 봉사하는 척하고, 목회자를 돕는 척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교회 내부를 장악하려 한다. 사람들을 편 가르고, 불만을 조장하고, 기존 구성원들을 밀어낸다. 교회는 어느 순간 복음을 전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업 거점이나 인간관계 네트워크의 숙주가 되어버린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반복돼 왔다. 이단 세력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공동체를 둘로 갈라놓고 결국 교회를 무너뜨린 사례는 이미 수없이 많다. 해외에서는 상황이 더 취약하다. 작은 한인사회 특성상 갈등이 생기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오지 마십시오.”
이 말은 차별이 아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방어다. 승냥이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오히려 승냥이는 목자를 넘어뜨리고 양 떼를 무너뜨린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설교만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교회와 교인들이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 되었다.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도 목회의 책임이다.
물론 모든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며 과시하지 않은 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그런 이들에게는 존경을 보내야 한다. 자신의 죄를 훈장처럼 떠벌리지 않고 조용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도 귀한 존재다.
문제는 과거를 회개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권력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느냐”는 식의 태도는 신앙도 아니고 회개도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교회가 살아남으려면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정화하고 보호할 힘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공동체는 결국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무너진다. 지금 동남아시아의 교회들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순진함이 아니라 분별력과 이런 무자비하고 악한 사람들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필자소개(김대윤)
캄보디아 화장품협회(CCA) 고문
캄보디아에서 왕립법률경제대학교 대학원(사법 전공)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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