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토바이의 나라에서 길을 잃은 한인 공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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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10-13 10:45본문
[칼럼] 오토바이의 나라에서 길을 잃은 한인 공장들
베트남 산업의 현주소와 한인 사업가들의 생존 과제
- 임용위 재외기자
- 입력 2025.10.12 22:07
- 수정 2025.10.1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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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인 사업가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더 이상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어렵게 구한 인력조차 하루가 다르게 떠날 궁리를 하고 있으니, 여의치 않은 경제 상황 속에서 사업주들의 수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젊고 체력 좋은 남성 직원들이 공장을 떠나는 현상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옮겨가는 새로운 일터가 대부분 ‘오토바이 운전’이라는 점이다.
공장에서 한 달 동안 땀 흘려 번 돈은 생활비로 모두 사라지고, 여가나 문화생활은 꿈도 꾸기 어렵다. 반면 오토바이 운전은 이야기가 다르다. 손님을 태워 목적지까지 이동하면, 운행 거리와 시간에 따라 적게는 4만 동, 많게는 10만 동 이상을 받는다. 한국 돈으로 2,500원에서 6,000원 남짓. 하지만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하루 종일 쉼 없이 일하면 공장 노동자의 ‘일주일치 임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백만 동(약 5만 5천 원)만 내면 새 오토바이를 할부로 구입할 수 있으니, 간단한 자격시험을 치르고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렇게 거리에는 ‘배달과 운송’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생계전선이 유행처럼 수놓아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외출 때마다 오토바이에 의존한다. ‘그랩(Grab)’ 앱을 열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5분도 안 되어 운전수가 코앞에 나타난다. 운전자의 등 뒤에 올라타 혼잡한 도로를 헤치고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잠시의 대화 속에서 베트남의 젊음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낯선 골목의 풍경을 스쳐 지나가며, 이 나라의 삶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베트남의 대도시는 이미 오토바이의 바다다. 시민 대다수가 자가용 오토바이를 이용해 출퇴근과 장보기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오토바이가 도시의 주인공이 된 풍경 속에는 베트남 산업구조의 한 단면이 숨어 있다. 공장 현장을 떠나는 젊은 노동자들,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해 흔들리는 생산 기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버티는 한인 사업가들의 절박한 현실 말이다.
베트남은 지금 한국의 산업화 시기를 벤치마킹하며 고속 성장의 길을 달리고 있다. 언젠가 오토바이가 자동차로 바뀌는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반산업을 지탱하던 인력난이 심화되고, 중소 제조업자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면 그 성장은 모래 위의 성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해외에서 사업하는 한인 사업가들의 절반가량이 ‘월 수익 0원’ 상태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사업의 방향을 재정비하지 못한 채 문을 닫는 한인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의 감각’이다. 한인 경제단체들은 더 이상 명분 위주의 단체활동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영정보와 현지형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재외동포 지원을 표방하는 정부 산하기관들 역시 현장의 목소리를 면밀히 듣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급변하는 베트남의 산업 풍경 속에서 한인 사업가들이 다시 희망의 엔진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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