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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왕국 견문록 2.0 ①...영화 ‘화양연화’와 잊혀진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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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7-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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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왕국 견문록 2.0 ①...영화 ‘화양연화’와 잊혀진 문명


앙코르 시대의 영광과 500년의 그림자: 캄보디아 천 년 역사가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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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앙리 무오가 그린 앙코르와트 스케치프랑스 동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앙리 무오가 그린 앙코르와트 스케치
박정연 재외기자.박정연 재외기자.

왕가위 감독의 명작 영화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남자 주인공 모우(양조위 분)가 앙코르 사원 벽면의 작은 구멍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듯 전하는 명장면은, 개인적인 이별의 정서를 넘어 이 땅이 간직한 깊은 상처와 간절한 염원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거대한 석기둥과 정교한 부조,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그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캄보디아 천 년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품고 있다.

무너진 사원 벽 틈 사이로 뻗어 나온 무화과나무의 거대한 뿌리가 석재를 감싸 안은 모습을 마주할 때, 경이로움을 넘어 마음 한켠이 숙연해진다. 그것은 단지 자연과 문명의 조우가 아니라, 침묵과 상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과거의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캄보디아 땅의 역사와 문화를 글로 풀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기록에 있지 않다. 사원 부조에 스며든 시간의 속삭임처럼, 이곳에 배어 있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꺼내고자 했다. 비록 희미하고 흩어진 기억들이지만, 그 속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찬란했던 고대 문명과 인고의 시간들

캄보디아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극적인 역사의 흐름을 간직한 땅이다. 지난 천 년 동안, 찬란하게 빛났던 500년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500년이 교차하며 격동의 세월을 거쳐왔다.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로 나아가던 시기, 크메르인들은 동남아시아의 심장부에서 찬란한 앙코르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인도의 세계관과 힌두·불교 사상이 융합된 이 문명은 석조 건축, 수리 체계, 도시 계획 등에서 동시대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상징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위대한 문명도 영원하지 않았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분열은 제국의 토대를 조금씩 허물어갔고, 결국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앙코르와트 회랑에 새겨진 ‘천국과 지옥’의 부조는, 찬란한 문화와 잔혹한 전쟁, 참혹한 시련이 교차하는 크메르의 역사와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조의 수십 개 장면처럼, 이 땅의 역사는 생생하고도 고통스럽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역사의 흐름 속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역사는 1세기경 메콩 델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푸난 왕국에서 시작된다. 이어 6세기 시작된 첸라 왕국을 거쳐,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세운 앙코르 제국은 600여 년간 동남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앙코르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개념 아래 신왕이 다스리는 신성한 왕국이었고, 왕은 신격화되었다. 권위와 종교적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사원과 거대한 관개시설이 세워졌으며, 수도 앙코르는 백만 명이 거주할 정도로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나 1431년 태국 아유타야 왕국의 침공으로 앙코르 도시는 무너지고, 수도는 프놈펜으로 옮겨졌다. 16세기 잠시 수도 역할을 했던 롱벡도 1594년 다시 아유타야에 함락되며, 크메르 왕국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영토를 잃고, 내부 갈등이 격화되며 국력은 점점 약화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약 90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완충지대 역할에 머물렀다. 개발과 교육은 뒷전이었고, 1953년 독립 당시 고등학교는 전국에 단 8개에 불과했다.

20세기 후반은 더욱 격동의 시기였다. 내전과 외세의 개입, 이념 대립 속에서 1975년 집권한 크메르루즈 공산 정권은  3년 4개월 20일 동안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권 붕괴 이후에도 내전은 이어졌고, 1991년 파리 평화협정과 1993년 유엔 주도 총선을 통해서야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권력투쟁과 사회 분열, 전쟁의 상흔은 오늘날까지도 캄보디아 사회를 깊게 짓누르고 있다.

현대 캄보디아의 도전과 희망

1990년대 이후 캄보디아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재건을 시도하며 민주주의와 경제 회복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1993년 총선을 통해 다당제와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지만, 1997년 훈센 총리가 무력을 동원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치적 후퇴를 겪었다.

그는 이후 20년 넘게 장기 집권을 이어오며 안정과 성장을 도모했으나, 권위주의적 통치와 인권 침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23년 총리직을 아들 훈 마넷에게 공식 이양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했지만, 훈센은 곧바로 상원의장에 올라 실질적인 권력을 유지하며 ‘상왕정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의 외형은 바뀌었지만, 정치·사회 구조의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경제적으로는 관광업, 섬유산업, 농업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 낮은 교육 및 보건 수준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외교적으로는 ASEAN 회원국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나,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외교는 여전히 쉽지 않다. 오랜 외세 의존의 그림자가 여전히 이 나라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기억하고 곱십어야 할 질문들

오늘도 나는 앙코르와트의 긴 회랑을 걷는다. 영화 '화양연화' 속, 사원 벽의 작은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던 그 장면처럼, 이 땅의 깊은 상처와 간절한 바람은 시간의 틈새를 타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앙코르와트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그 공간엔, 찬란했던 영광과 깊은 아픔이 나란히 숨 쉬고 있다. 천 년을 넘어 우리 앞에 다가온 듯한 그 묵직한 물음 앞에서, 이곳의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가 시간을 품은 채 속삭인다.

“문명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과거의 상처와 잊힌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과거의 무게와 오늘의 현실을 함께 껴안으며, 2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 땅이 간직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들춰보고자 한다.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 잊힌 장면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속에서, 우리 모두가 새롭게 마주해야 할 시선과 깊은 성찰이 깃들길 바란다.

이제, <앙코르왕국 견문록 2.0>의 첫 장을 함께 넘기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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