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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동영 통일부장관, “94년 북핵위기 후 4번의 해결기회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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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6-07-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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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공존 바탕은 9.19 합의 준수”
7월 1일 민주평통 유라시아 대회에서 특강

(인천=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부르자.”
“1994년 북핵위기 후 4번의 해결기회가 있었는데, 다 놓쳤다.”
“남북 평화공존의 방법은 문재인 정부의 9.19 합의를 준수하는 것”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9월 1일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민주평통 유라시아지역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특강을 했다. 이 행사에는 북미주와 중남미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민주평통 위원 1,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강창일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강연에 이어 연단에 오른 정동영 장관은 “700만 해외동포들이야말로 5대양 6대주에 떠 있는 한민족의 척후선이자, 항공모함”이라면서, “700만 해외동포들이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키가 엄청나게 자랐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전 세계에 기업 가운데 주식 시가 총액 1조 달러, 우리 돈으로 1,500조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12개가 있다”면서, “그중 8개가 미국기업이고 미국 아닌 기업은 4개로, 사우디의 아람코, 대만의 TSMC, 그리고 두 개가 대한민국의 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군사 전문잡지, 또 영국의 디펜스 잡지에서 평가한 2025년도 군사력 결과를 보면 1등이 미국, 핵탄두를 6천 개 가진 러시아, 이어 중국, 사드, 인도에 이어 한국이 5등”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은 평화공존”이라면서 이 정책은 세 가지 축으로 돼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정부가 노태우 정부라고 생각한다”면서, “인천공항, 분당 일산 신도시, 일산 국립암센터, 한소수교, 한중수교, 유엔 동시 가입, 한반도 비핵화 선언, 그리고 그 위에 쌓아 올린 금자탑이 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라고 역설했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조문도 소개했다. “제1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서로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서로 비방 중상하지 아니한다”라면서 “3조는 ‘삐라’ 같은 걸 안 보낸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정 장관은 “이 남북기본합의서 이래 지금까지 35년 동안 유지돼 온 것이 남북이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평화 공존 노선”이었고, “평화 통일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면서, “지난 정권 3년 동안 이 평화공존노선은 폐기됐다”고 설명했다. “북을 주적으로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선제 타격을 불사할 수 있다고 외쳤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결과 북은 적대적 두 국가로 질주했다”면서, “개성공단은 파괴됐고 금강산은 멈췄고, 동서 연결했던 철도와 도로는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통해 전쟁 일보 전까지 치달았던 불행했던 남북 관계에서 지난 1년은 치유하는 과정이자, 깊게 파인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과의 다양한 접촉, 일단 만나는 것이 이해의 시작”이라면서, 자유롭게 만나도록 하는 민간 교류 개방이 지난 1년 동안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3만 4천 명의 북한 이탈 주민이 있다”면서, “목숨을 걸고 탈북한 그들에게 탈북민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호칭”이라며,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수년간 해 온 것처럼 북향민으로 불러주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향후 4년여 이재명 정부 임기 동안에 할 일은 김대중 대통령 때 동서 도로를 연결하고 철도를 연결하고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 때 개성공단을 만들어내고, 문재인 정부 때 평양 능라도에서 대통령이 연설하고 백두산에 손잡고 올라가는 그러한 남북 관계의 황금시대를 되살려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6.15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도 강조했다.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의 정상이 악수하고, 서로 죽고 죽이려는 증오의 시대를 서로 돕는 화해 협력의 시대로 바꾸려 했다”면서, “6.15 이후 역사는 바로 화해 혁명의 역사로 접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 10월 4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합의문과 2018년 2019년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 합의문의 의미도 소개했다. 정전체제를 평화 협정으로 바꾸자고 합의한 내용이다.

그는 걸림돌이 되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북한이 34년 전인 1992년 러시아에서 제공받은 영변의 5메가와트짜리 실험용 원자로에서 90g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을 북한이 IAEA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했다”면서, 이것의 검증을 둘러싸고 북핵 위기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스웨덴의 세계평화전략연구소에서 북한의 핵탄두 수를 50개에서 60개로 봐야 하며, 언제라도 핵탄두로 바꿀 수 있는 핵물질도 30개 분량이 된다고 했다”면서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북미 적대관계 속에서 지난 34년 동안 4번의 해결 가능한 기회가 있었다”면서, “이 네 번의 기회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오늘 이 시간에도 북한의 핵 능력은 계속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네 번의 기회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하나는 94년 제네바 합의 때였다. 94년 10월 제네바에서 북은 핵을 동결하며, 미국은 관계 개선과 중유 공급을 약속했지만 8년 만에 깨졌다. 이어 2004년 다시 기회가 있었다.

정 장관은 그때도 통일부 장관이었다. 그는 당시 6자 회담을 지휘하면서, 평양을 설득해 2004년 9월 19일 9.19 6자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북한의 수석대표들이 사인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개발 중인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국교를 수립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9.19 공동성명 합의문에는 한국에서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단서도 들어있었다.

이 합의문도 휴지통으로 들어가면서 북이 선택한 것은 핵실험이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최초로 핵실험을 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이 나서 북미 협상 결과 2007년 2.13 합의가 도출됐다.

베를린에서 이뤄진 이 합의의 내용은 단적으로 9.19 합의를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북한이 냉각탑 CNN을 불러 영변 원전을 폭파하는 등 진전이 있었으나, 2007년 12월 한국에서 정부가 바뀌면서 다시 2.13 합의는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2018년 6.12 싱가포르 합의다. 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으나, 2차 회담인 하노이에서의 ‘노딜’로 결국 무산됐다.

그는 결론을 말하겠다면서 먼저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우리 군대를 우리가 지휘하는 전작권을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전략적 자율성으로,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길은 전략적 자율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주국방, 전략적 자율 이 두 가지를 무기로 해서 73년 동안 넘지 못한 평화 협정의 장벽을 넘고, 이재명 대통령의 평화공존 철학을 무기로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 체제를 향해 가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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