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동포들의 ‘절규’...“벚꽃처럼 흩어지지 않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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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1-15 16:49본문
고려인 동포들의 ‘절규’...“벚꽃처럼 흩어지지 않게 해달라”
김점배 민주평통 유·중·아지역회의 부의장 인터뷰
“통일을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하나가 돼야”
“유라시아 철도 횡단 프로젝트는 꼭 성사시킬 터”
- 박철의 기자
- 입력 2026.01.04 20:50
- 수정 2026.01.0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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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배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회의 부의장을 지난 12월 29일 서울 서초구 유엔피스코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지난 12월 8일부터 12월17일까지 열흘 동안 키르기스스탄을 시작으로 UAE, 폴란드, 독일, 스페인을 거쳐 영국 런던에 이르기까지 6개국을 직접 방문하며 7개 협의회의 출범을 직접 주도하고 귀국한 김점배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회의 부의장을 지난 12월 29일 서울 서초구 유엔피스코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번 여정에서 그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중앙아시아협의회 출범식은 단순한 공식 행사를 넘어, 재외동포 정책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하는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이곳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들은 ‘지원의 대상’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바람과 꿈을 이야기했고, 대한민국과 민주평통을 향해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강제이주의 역사, 그러나 스스로를 연약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역사는 1930년대 소련 시절 연해주에서 시작된 강제이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많은 이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흩어졌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 자체가 과제였지만, 고려인들은 봄이 오자 씨를 뿌렸고, 세대를 이어 정착에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결코 ‘비극’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불쌍한 존재가 아닙니다. 강제이주는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도 한인 공동체를 지켜냈고, 오늘날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일정한 성취를 이뤄냈습니다.우즈베키스탄 최고의 부자가 고려인입니다.”
그들만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 동포들은 6·25 전쟁이라는 더 큰 비극을 겪고도 세계 10대 경제국을 만든 것 자체가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위로했다”며 “고려인들이 단순한 ‘과거의 피해자’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주체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제22기 민주평통 북유럽협의회 출범회의 기념촬영 모습.
제22기 민주평통 중동·아프리카협의회 출범회의 기념촬영 모습. “우리는 고려인 동포입니다”
이번 중앙아시아협의회 출범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자신들에게 “고려인이 아닌 고려인 동포라고 불러 달라”고 호소했다. 그들에게 이 한 단어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동포라는 호칭은 소속감이고, 연결이며, 공동체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고려인을 돕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됐어요. 출범식에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양모 전통복을 저에게 입혀주고, 일행들에게 와인과 보드카, 꿀 등을 선물하고, 뒤풀이 자리에서는 40대 청년들이 나서서 술값을 내겠다고 하는 모습에 따뜻한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진정한 동포 정책의 출발점은 고려인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은 민주평통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통일 논의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 서고 싶어 했다. “고려인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는 설명이다. 현재 러시아 고려인과 조선족은 국적 문제로 민주평통 자문위원 위촉이 어렵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한다. 실제로 중앙아시아협의회는 전체 위원의 30~40%가 현지 고려인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평통의 역할에 대해 김 부의장은 ‘통일 이전에 연결’을 강조했다. 그동안 민주평통은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을 반복적으로 외쳐왔지만, 정작 재외동포 사회 내부의 연결과 연대에는 충분히 공을 들이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고려인 동포를 비롯해 유럽의 입양인, 독일의 광부·간호사 세대, 조선족 등 재외동포 사회는 각기 다른 역사와 경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은 부족했다는 자성이다.
그는 “민주평통 내부에서 우리끼리도 뭉쳐 있지 않은데 평화를 논할 수 있겠느냐”며 “친목과 교류, 공동의 기억을 만드는 일이 곧 평화의 시작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차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 구호’가 아닌 ‘역사 이해’
이번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회의에서의 주요 담론은 차세대 교육이었다. 이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한반도의 분단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왜 통일이 필요한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솔직한 반응이었다”며 “이들은 주입식 통일교육이 아니라, 역사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평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역할이 있다는 평가다. 정부 부처의 형식적인 차세대 프로그램이 아니라, 재외동포의 시선에 맞춘 역사 콘텐츠, 이동형 교육, 현장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김 부의장이 차세대를 위해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바로 ‘유라시아 횡단 프로젝트’였다. 유라시아 철도를 따라 이동하며,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고려인의 이동 경로를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자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진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자, 차세대에게 살아 있는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고려인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함께 보고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민주평통 내부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행사성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 기획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평통이 단지 회의체가 아니라, 기억과 사람을 잇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제22기 민주평통 중앙아시아협의회 출범식에서 고려인 동포가 김점배 부의장에게 직접 만든 양모 전통복을 선물하는 모습. “벚꽃처럼 흩어지지 않게 해달라”
이번 행사에서 한 고려인 원로의 발언은 김 부의장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고 했다.
“봄에 벚꽃이 피면 아름답지만,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흩어집니다. 제발 우리 고려인 동포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 말은 민주평통을 향한 당부이자, 대한민국을 향한 요청이었다. 고려인 동포들은 이미 준비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손을 내밀어주는 제도와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이다. 민주평통의 역할은 분명해지고 있다. 통일을 외치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잇고 역사를 복원하며, 평화를 일상으로 만드는 조직. 고려인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하자”는 것, 그리고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민주평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해외에서 민주평통 출범식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동포사회를 잇는 상징적 접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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