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남아공 동포간담회… 김혜경 여사의 섬세함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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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12-01 09:54본문
우버 택시 통제로 간담회 장소 가는데 애먹어
지난 11월 23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동포간담회가 열렸다. 김혜경 여사 오른쪽이 이미숙 케이프타운한인회장.이재명 대통령 동포간담회에 참석하려고 당일치기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1,400km에 이른다.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리고, 버스나 기차로는 만 하루가 걸린다. 일정이 바빠서 새벽에 가서 한밤중에 내려오는 당일치기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대통령 얼굴만 보고 내려오는 것도 어디냐며 감사하며 끊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왔다. 하루 전 스케줄에도 참석할 수 있냐는 전화였다. 김혜경 여사와 교민사회 여성 리더들이 만나는 간담회라고 했다. 비행 날짜 조절이 안 되는 옵션으로 티켓을 끊었는데,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티켓을 변경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기 프로그램 ‘동상이몽’에서 재미있게 공감하며 두 분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김혜경 여사는 정말 밝은 분위기의 주부였고 내조자였다. 여성스러운 리더였고 정말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좋아해서 그랬는지 더 예뻐 보였다. 특히 ‘키세스단’을 언급하실 때 눈빛과 음성에서 진심이 전달돼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김 여사 앞이어서 모두 조신하게 음식을 들었다. 나는 김 여사 한 자리 건너에 앉았다. ‘반찬’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든 음식을 배가 부르게 먹어 디저트를 남겨야 했다. 이날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 간결한 대화들에 들어있는 정제된 내용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다음날은 동포간담회였다. 일찍 숙소를 나섰는데, 엄청나게 고생했다. 우버택시를 타고 갔는데 경찰들이 한국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은 들여보내 주고 현지인이 운전하는 우버 차량은 몇km 밖에서부터 통제했다. 오늘을 위해서 1,400km를 날아온 손님이고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걷는 것보다도 느린 속도로 차는 갔고 예비모임 시간이 거의 다 되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사관 관계자에게 연락했다. 나와 운전기사, 경찰, 대사관 분과 스피커폰으로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야 간담회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에 정성스레 다듬은 머리에서 김이 솟을 정도였지만, 뛰어서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이후로는 차분하게 기다리는 순서였지만 아침을 달걀 두 개로만 해결한 탓인지 강한 허기가 느껴졌다.
대통령님과 여사님이 들어오셨다. 반가운 마음 그대로를 보여준 내 모습이 여과 없이 영상에 나와서 조금 민망했다, 여사님 옆에 앉을 수 있었던 나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여사님은 섬세했다. 티 나지 않게 대통령을 향하여 눈과 손을 집중하며 대통령의 옷깃이나 머리에 약간의 티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전소영 회장의 환영사와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나고 민주평통 아프리카협의회 중남부지회장의 건배사가 있었다. 이어 식사 시간에 나는 또 섬세하고 배려 깊은 여사님의 심성을 직접 느꼈다. 메인메뉴 스테이크에 장식된 식용 꽃이 들어올 때였다. 애피타이저와 메인메뉴, 디저트도 꽃 못지않게 화려하게 접시 위에 장식되어 나왔다. 잘 장식된 스테이크를 써는 중에 갑자기 내 접시의 꽃 속에서 연초록의 무언가가 올라왔다. 나비 애벌레였다. 티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도 여사님이 내 접시를 보았다. 나는 ‘정말 무공해 꽃이네요’라며 당황스러운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다.
그런데 여사님이 자연스럽게 내 꽃을 당신의 앞접시로 가져갔다. 그리고 여사님의 꽃으로 살짝 포개어 놓았다. 그곳이 편했는지 나비 애벌레는 접시를 치울 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여사님과 함께 웃으며 짧은 추억을 공유했다.
케이프타운 교민들을 안전과 복지를 위하여 안건을 발표할 때 말라리아로 쓰러졌던 청년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또 다른 이유로 한국인의 숫자가 많은 케이프타운의 중요성도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때, 그 청년은 내 둘째 아들과 동갑이었다. 그 청년을 살리고 싶어 절절한 심정으로 열흘 동안 의식 없던 청년을 위해 중환자실을 매일 드나들었던 시간이 다시 떠올라 울컥해졌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발표를 마치고 살짝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여사님이 내 손목을 꼬옥 잡아주셨다. 여사님도 아들이 있었으니 더 공감해 주셨던 것 같다.
여사님은 정말 섬세하게 주변을 바라보며 때론 매의 눈으로, 때론 언니처럼, 또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배려해주고 공감해 주셨다. 여사님을 보면서 지금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대통령님의 에너지 근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짐작했다. 대통령의 말도 밝고 때로는 귀엽기도 했다. 죄송한 말이지만 정말 그랬다. 여사님이 계셔서 그 힘이 대통령님을 밝게 빛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님은 웃으시며 유머를 곧잘 던졌다.
여사님 곁에 앉았던 짧은 시간에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왕복 3,200km를 운전해서 투표에 참여했던 당시의 피로와 고됨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건강한 대한민국과 동포사회가 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 부디 힘써 주시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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