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달라진 한국 문화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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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4-12-04 09:44본문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白凡逸志)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나의 소원’ 중에서
K-culture는 한국 문화(Korean-culture)를 통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K-culture’를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K-culture is a term that refers to South Korean popular culture, which includes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food, and more.”(K 문화는 음악, 영화, 드라마, 패션, 음식 등을 포함하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K-culture는 옥스퍼드 영영사전에도 등재되어있다. 이렇듯 한국문화가 전 방위로 세계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작년 여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화제를 모았었다. 뉴욕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한 초등학생이 점심시간에 김밥을 마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조회 수 700만을 넘기며 미국 언론은 물론 한국의 KBS 뉴스와 연합 뉴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등 전 세계 언론매체를 통해 한인 2세 소녀의 김밥 마는 영상이 퍼지며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영상을 접하면서 나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요즘은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세계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음식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에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국 음식은 저녁 식사 때와 주말에만 먹었다. 그중 김치를 먹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옷이나 몸에 밴 김치 냄새는, 미국인이 대부분인 직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사람이나 사물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로 인종과 민족을 구분 짓기도 한다. 특히 음식이 그렇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나고 재배된 재료로 만든 음식은 그 맛과 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매일 먹는 사람들은 그 음식만의 독특한 냄새를 자각하지 못한다. 치즈와 해물과 마늘이 들어간 이탈리아의 파스타, 한국의 마늘과 젓갈이 들어가 발효된 김치, 각종 향신료가 들어간 인도 음식, 기름과 생강과 센 불이 만나 향을 만들어내는 중국 음식, 동남아시아 국가의 고수와 젓국이 들어간 음식 등 특유의 냄새를 그들은 쉽게 느끼지 못한다.
내가 직장 내에서 음식 냄새에 극도로 민감해진 계기가 있다. 나보다 몇 년 늦게 입사한 직장동료가 있었다. 그는 아침 식사를 매일 한식으로 하고 출근했다. 상큼한 실내 공기를 가르며, 그가 아침 인사를 건넬 때 훅 끼치는 김치와 마늘 냄새는 같은 한국인인 내가 맡기에도 역했다. 미국인 동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가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요즘은 김치를 자랑스럽게 먹는 외국인, 재료를 준비해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미국인들도 상당하다. 한국 식품점뿐 아니라 아시안 계 식품점은 물론 미국인이 주 고객인 로컬 그로서리스토어에서도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김치와 김 진열대를 따로 설치하고 있다. 10 수년 전 초코파이 열풍을 시작으로 라면에 이르기까지 한국 식품은 미국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이제 그들에게 마늘, 고춧가루와 고추장, 김치, 라면은 기호품이 되었다.
어쩌다 한국 음식을 점심으로 싸가는 날이면 런치룸에서 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도시락통을 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테라스에서 먹거나 궂은날에는 차 안에서 먹었다. 식사 후 양치질은 필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음식을 마이크로 오븐에 데울 때 풍기는 냄새를 미국인 동료들이 오히려 어떤 음식이냐는 둥 관심을 보이며, 시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원들끼리 가끔 점심 팟락(potluck)을 할 때면 불고기나 김밥, 잡채, 만두, 김치 등을 가져오라며 특별히 주문하기도 한다. 점심으로 한국 컵라면을 가져와 먹는 친구들도 있다.
K-culture(한국문화)가 어디 한국 음식뿐이겠는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류를 타고 K 드라마, K팝, K 무비 등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글은 어떠한가, 한국어를 정규 과목 또는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와 학교가 늘고 있다. 한국학과를 개설하고 한국문화와 한글,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지난 2011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영문판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혜순 시인은 2024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하며 미국을 놀라게 했다. 이민진과 김주혜 같은 미국이민 1.5세 작가들의 한국적인 문학 작품이 미국 문학판은 물론 러시아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강 작가의 2024 노벨문학상으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한국(Korea)을 뜻하는 ‘K’, K-culture를 통한 한글의 빠른 보급은 물론, 이제 K푸드, K 마트까지 합세해 그 저변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이제 한국 음식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며,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갈비, 잡채, 만두, 김밥, 파전, 막걸리, 떡 볶기, 자장면, 짬뽕, 초코파이, 라면, 김, 소주 등은 이미 그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정원 가꾸기에 필요한 호미, 낫, 갈퀴는 물론 심지어 한국식 찜질방까지 한국 문화가 세계를 삼키고 있다. 181개국에 흩어져 있는 700만 재외동포들은 고국을 떠나 디아스포라로서의 쉽지 않은 삶을, 한국문화의 달라진 위상으로 보상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K-culture에 열광하고 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소원,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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