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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 찾은 ‘특별한' 사람들의 귀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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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4-10-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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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 찾은 ‘특별한' 사람들의 귀한 '발걸음'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회원 100여명 참여, 파란눈의 배우자도 일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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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이 10월1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헌화하고 있다. 월드킴와 회원들의 배우자인 파란눈의 외국인들(사진 왼쪽)도 함께 했다. [황복희 기자]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이 10월1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헌화하고 있다. 월드킴와 회원들의 배우자인 파란눈의 외국인들(사진 왼쪽)도 함께 했다. [황복희 기자]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이 10월7일 현충탑에 헌화한뒤 묵념을 하는 모습. 월드킴와의 이날 현충원 참배는 5년 전에 이어 두번째로 이뤄졌다.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이 10월7일 현충탑에 헌화한뒤 묵념을 하는 모습. 월드킴와의 이날 현충원 참배는 5년 전에 이어 두번째로 이뤄졌다.  

10월 17일 오전 10시경.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모였다. 외국인 배우자를 둔 국제결혼 여성들의 모임체인 사단법인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월드킴와) 회원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든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이날 참배가 시작되기 앞서 현충문 앞에서,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기자에게 다가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곳 현충원이 처음입니다. 1972년 열아홉 나이에 파독 간호사로 건너가,‘88년에 고국의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해외서 살다보니 이곳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 온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합니다.”

100여명이 함께 한 월드킴와의 이날 현충원 참배의 의의는, 초로의 나이가 되어 현충원을 처음 찾았다는 이 여성의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의 가슴에 걸린 이름표에는 ‘정명열 World-KIMWA 부회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온가족이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 동행한 정명열 월드킴와 독일지회장(맨 왼쪽) 가족.  온가족이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 동행한 정명열 월드킴와 독일지회장(맨 왼쪽) 가족.  
이날 현충원 참배에 동행한, 한 월드킴와 회원의 외국인 배우자가 무명용사의 탑 앞에서 참배를 하는 모습.   이날 현충원 참배에 동행한, 한 월드킴와 회원의 외국인 배우자가 무명용사의 탑 앞에서 참배를 하는 모습.   

이날 월드킴와의 현충원 참배에는 파란눈의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해외에서 파독 간호사 등 한국 여성들과 부부의 연으로 오랜 세월 함께 한 외국인 배우자들이었다. 이들은 월드킴와 회원들 속에 큰 키를 삐죽이 내민채 현충탑 참배부터,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참배, 유해를 찾지 못한 6.25전쟁 전사자를 기리는 부부 위패 참배, 마지막 의장대 근무교대식에 이르기까지 1시간 30분 여정을 내내 함께 했다. 그 중 정명열 월드킴와 독일지회장은 독일인 남편과 자식, 손자 등 온가족이 참석했다.

‘해외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외동포들에게 고국의 의미는 사뭇 크고 깊다. 그럼에도 재외동포들이 한번씩 고국을 방문해 호국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근에 고상구 세계한인회총연합회장과 서정일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이 회원들을 대동해 이곳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주목을 받은 것도 그같은 배경 때문이다.

박사라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총회장이 현충탑 참배를 마친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평안히 잠드소서." 박사라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총회장이 현충탑 참배를 마친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평안히 잠드소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김예자 상임고문이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김예자 상임고문이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박사라 월드킴와 총회장에게 현충원 참배를 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젊은 분들의 뜨거운 피와 고귀한 생명을 바친 그들의 아름다운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그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곳에 서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죽음을 다시한번 기억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얼을 심어주기 위해, 특히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은 이곳 현충원을 꼭 한번은 참배를 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더욱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얼이 심어지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국제결혼 여성들을 데리고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상당수가 현충원을 처음 찾은 이들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안내자의 설명 한마디 한마디는 금속활자처럼 가슴과 머리에 쏙쏙 박힐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현충원이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이 되면서 군인 외에 국가 유공자들까지 안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사실, 그럼으로 해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4명의 대통령과 국가유공자, 소방관, 경찰관, 학도의용군 등 총 19만5000여 명이 안장된 사실, 그러다가 1996년 국립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2006년 국립묘지법이 제정되면서 현 명칭인 국립서울현충원으로 개칭이 됐으며, 올해 7월24일 69년만에 소관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부로 이관이 되어, 내년 서울현충원 창설 70주년이자 현충일 70회를 앞두고 있는 현충원의 역사를 숙연하면서 집중한 표정으로 들었다.

10월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 100여명이 유해를 찾지 못한 6.25 전사자의 부부 위패가 모셔진 야외공간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10월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 100여명이 유해를 찾지 못한 6.25 전사자의 부부 위패가 모셔진 야외공간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회원들은 현충탑에 헌화하고 참배한데 이어 현충문을 나와 바로 옆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이동해 ‘이름마저 나라에 바친’ 무명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그리고 무명용사탑 뒤로 6.25 전쟁 당시 포항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학도의용군 48명의 유해가 함께 안장된 반구형 조형물을 줄지어 돌며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추모했다.

회원들은 현재 국가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무명용사탑의 뒷면에 새겨진 한 글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머물렀다. “이곳에 겨레의 영광인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

이날 월드킴와의 참배는 현충문 의장대 근무교대식 관람으로 마무리됐다. 

김예자 월드킴와 상임고문은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국가발전에 헌신하겠습니다.”

10월1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현충문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단체촬영을 하고 있는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 10월1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현충문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단체촬영을 하고 있는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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