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낙원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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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5-12-03 09:58본문
[우리말로 깨닫다] 낙원과 언어
- 조현용 교수
- 입력 2025.12.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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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인간은 함께 살아갑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의 한자도 사람 사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살아야 사람입니다. 나만을 위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중생(衆生)도 사실은 무리라는 의미입니다. 개인이면서 동시에 함께인 사람이 중생입니다. 기독교에서 너희 안에 천국이 있다고 하는데, ‘안’은 마음속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어에는 ‘사이가 좋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인간은 사이가 좋아야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이를 다른 말로 하면 ‘접촉’입니다. 서로 좋아야 좋은 겁니다.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나라마다 낙원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기 전에는 낙원에서 살고 있었다는 기독교 창세기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짓기 전까지는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어서 선악을 구별하게 된 것이 낙원에서 멀어진 이유입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일까요? 아무튼 낙원은 즐거운 곳입니다. 살고 싶은 곳이지요.
극락(極樂)은 지극히 즐거운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 극락에 가고 싶다는 종교도 있습니다. 지금 사는 이 세상이 고통이니, 이 고통을 벗어나서 저 세상에서는 즐거운 일만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겠죠. 지극한 즐거움이란 무얼까요? 상상을 해 봅니다만, 극락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니 극락도 다를 수밖에요. 천국이나 천당을 낙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래도 낙원과 천국은 느낌이 다릅니다. 천국이나 천당은 왠지 이 세상에는 없는 곳으로 보입니다. 하늘에 있으니까 정말로 죽어야 갈 수 있는 느낌입니다. 반면에 낙원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는 느낌입니다.
가끔 어떤 곳이나 어떤 나라가 자신의 지역이나 국가를 지상 낙원이라는 표현하기도 합니다. 들을 때마다 정말로 그곳이 지상 낙원일까에 대해서 의문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밖에서는 지옥이라고 이야기하고, 안에서는 낙원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순이 있기도 합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낙원으로 느낀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낙윈(樂園)의 낙은 즐거울 ‘락(樂)’입니다. 한자의 뜻으로는 즐거운 동산이 낙원이네요. 낙이 들어가는 말로는 쾌락(快樂), 향락(享樂), 오락(娛樂) 등이 있습니다. 왠지 가벼운 느낌이 많습니다. ‘희열(喜悅)’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사실은 쾌락도, 향락도 모두 좋은 말입니다. 다만 쾌락만 쫒고, 향락을 찾는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낙원도 때로는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늘 행복하고, 즐거운 게 꼭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어떤 곳이 낙원일까요? 저는 낙원의 답은 낙에 있다고 봅니다. 낙은 즐겁다는 뜻입니다. 즐거운 곳이 낙원이라는 의미이니, 즐겁다는 뜻을 알면 됩니다. 즐거움은 함께 하는 기쁨의 의미입니다. 기쁘다는 말이 개인적 차원이라면, 즐겁다는 말은 함께하는 차원입니다. 자주 인용하는 구절로 논어의 학이편이 있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배우는 것은 기쁜 것이고,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는 것은 즐거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혼자서는 낙원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 접촉은 의사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소통은 즐거운 감정의 소통입니다. 서로 즐거운 감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낙원입니다. 낙원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과 언어를 나누기 바랍니다. 다른 언어여도 좋고, 같은 언어여도 좋습니다. 서로 사투리를 하여도 좋습니다. 서로의 말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배우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낙원에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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